diary

뭘 하고 싶은 걸까?

2022. 8. 29.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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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졸업하고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여기저기 마구잡이로 아무 일이나 해왔던 짧지 않은 시간들. 

내가 뭘 하고 싶은 것인지, 뭘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보다 얼마를 벌 수 있는지 거리는 얼마나 가까운지 몇 시간이나 일을 해야 하는지 이런 것들에 더 초점을 맞춰왔다. 하는 일이 만족스럽지 않으니 내 안에서 채워지는 만족이 있을 리 없었다. 외부에서 인정을 받을 때에만 만족감이 느껴졌고 그것은 아주 잠시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만족하지 못하고 나를 괴롭게 하는지 생각해볼 시간이 없었다. 나는 부모님의 걱정을 덜어드리기 위해 돈을 벌어야 했다. 쉬면 안 됐다. 남에게 평가받는 것에 익숙하고, 남들의 잣대에 휘둘리는 것이 답답하면서도 답답한 줄도 몰랐다. 변화무쌍한 삶을 살았다고 생각하지만 요 1년 새에는 정말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생각지도 않던 대학원에 들어가고, 영원히 하지 않을 것 같던 연애를 시작하고,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다.

 

부모님과 떨어져서 돈을 벌지 않는 생활. 오롯이 나를 위한 생각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 것이다.

나를 오랜 시간 봐온 지인들과 남자 친구는 지금이 좋은 기회라고 이야기해주었다. 그동안 쉴 새 없이 뭘 하고 싶은지도 모르면서 앞만 보고 달렸으니 이제 공부를 하면서 앞으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라고 했다. 그러나 그동안 재미없는 일을 하며 억지로 살아오면서 자존감과 효능감이 많이 떨어져 있던 나는 대학원 공부마저 내 길이 아닌 것 같다며 새로운 어려움에 부딪힐 때마다 좌절했다.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지,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것을 하고 싶은지 생각하기보다 당장 논문 한 줄을 읽는 것이 왜 이렇게 어려운지, 왜 나는 연구하고 싶은 주제가 없는지, 그동안 왜 영어공부를 해두지 않았는지 이런 자책을 하며 나를 채찍질하는데 시간을 썼다.

 

자꾸만 잊어버렸다. 내가 대학원에 와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학점 따위는 신경 쓰지 말고 졸업요건만 갖추고 일단 내가 하고 싶은 것과 좋아하는 것을 찾자는 목표는 그동안 살아온 삶의 방식 탓에 자꾸만 잊혔다. 당장 수업시간에 망신을 당할까 봐 그러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며 괴로워만 했다. 애초에 다른 연구원들과 나는 대학원에 온 목적 자체부터 달랐고 십 년도 넘게 사회생활을 하다가 갑자기 대학원에 진학을 했으니 천재가 아니고서야 뒤쳐지는 게 당연할 수밖에 없는데 나의 평범함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 들통나는 것이 너무 두려웠다. 하지만 나는 평범한 사람이고 박사과정에 진학할 것도 대단한 학자가 될 것도 아니었다. 나에게 주어진 2년이란 시간은 수업시간에 발표를 잘하지 못할까 봐 전전긍긍하는 데 쓸 것이 아니라, 그동안 미뤄두었던 진정으로 내가 즐겁게 할 수 있는 것을 찾는 것에 집중하는데 쓰여야 한다. 

 

여전히 나는 자주 잊어버리고 또 그만큼 무기력해진다.

논문을 쓰고 있는 지금, 논문을 써야 한다는 사실이 괴롭고 한 문장도 잘 써 내려갈 수 없는 현실과 레퍼런스 한 개를 분석하는 것이 힘들다는 사실에 좌절한다. 마음속으로 정한 기간 동안 논문을 완성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 또 괴롭다. 그 괴로움이 나를 무기력하게 만든다. 하지만 논문을 조금 늦게 제출하는 것이 졸업을 못하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수업시간에 능숙하게 발표를 못한다고 해서 비웃을 사람도 없지만 부끄럽다 해도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 재미있어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을 찾는 일이다. 그 사실을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이렇게 남겨둔다. 갑작스러웠지만 결코 쉽지 않고 앞으로 또 있을지 없을지 알 수 없는 이 소중한 시간을  더 이상 무의미하게 보낼 수는 없다. 다시 생각해보면 두 학기 만에 논문을 쓸 수 있을 정도의 실험을 설계해서 결과를 얻어냈고, 논문 외 다른 졸업요건도 이미 갖춰놓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입학했지만 어떻게든 두 학기를 무사히 마무리해냈다.

 

만족할 줄 모르는 욕심을 내려두고, 스스로를 다그치는 것을 멈추고, 편안한 상태로 놓아두는 것. 편안한 상태의 내가 움직이는 곳으로 가보는 것. 그것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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